칸트의 미학과 인간의 대상화에 대한 비판은 현대미술의 중요한 철학적 근간이 되었다. 칸트에게 목적을 가진 아름다움은 더 이상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볼 때 느끼는 “아름답다는” 감정은 목적이 없는 반면, 이성을 보고 느끼는 “아름답다는” 감정은 배고픈 것과 마찬가지로 목적성을 가지기 때문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포스트 모던 이후 시공간을 초월한 “미”에 대한 믿음은 사라졌지만, 서로의 치수 하나 하나, 주름 하나 하나에 신경쓰는 현 풍토에서 칸트의 시각은 진부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선하다.
하지만 대상화 (Objectified)가 주는 즐거움이 없다면 인생은 얼마나 무미건조하겠는가. 사람은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 전체를 대상화하고 왜곡하며 꿈을 꾼다. “첫사랑,” “이상형,” “연애,” “미녀,” “미남,” “사랑,” 이 모든 것들은 상대에 대한 왜곡이며 환상이다. 사람은 그가 속한 문화에서 환상을 공유하기를 원하며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 환상을 공유하며 그 환상에 형태와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환상이 시간과 공간을 거치면서 그 거대해진 시선은 결국 사람에게로 돌아와 족쇄가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대상화되는 과정은 전쟁과도 같다. 결국 서로의 환상의 충족을 위해 스스로를 대상화 해나간다. 결국 대상화의 과정은 사회화 과정과도 흡사하다. 여자로서, 남자로서,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한국인으로서, 아시아인으로서, 각자의 위치와 나이에서 기대되는 모습으로 순응해간다. 결국 자신의 환상을 위해서 말이다.
-김리진